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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없이 즐기는 우리역사 얘기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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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없이 즐기는 우리역사 얘기⑨

-충무공 정충신 장군 이야기-

~@img!!김 영칠 수필가 나라와 겨레를 위해 일하다 돌아간 분들을 어떻게 예우해야 할까요? 국가의 품격, 나라의 정체성, 국민의 자부심과 관련된 문제라고 봅니다만, 우리는 지난역사에서 많은걸 배울수 있지요. 왕조시대의 ‘시호(諡號)제도’는 국가대의의 상징이었습니다. 학문과 치세에서 큰 업적을 남긴 경세가를 추증(追贈)하여 문묘에 배향 한다든지, 국가위난시에 몸을 바친 장군을 만인지상의 품계로 올려서 만세사표로 받드는 일이 치세의 으뜸 이었지요. 충현사업(忠顯事業)은, 곧 국가의 정신이자 중심가치 이니까요. 시호는 원칙적으로 종친과 문무관중에서 정2품 이상의 실직(實職)을 지낸 사람이 죽으면 수여했는데, 뒤에는 범위가 확대되어 제학(提學)이나 유현(儒賢) 절신(節臣)등은 정2품이 못되어도 시호를 내린 사례가 있지요. 문관의 경우는 문자(文字)를, 무관은 충자(忠字)를 가장 선호했고, 특히 무관은 ‘충무(忠武)’를 으뜸으로 쳤는데요. 충무공하면 언뜻 이순신장군을 떠올리지만, 사실 우리역사에서 ‘충무공’의 시호를 갖고계신 이들은 대략 열분이 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때의 지용수(池龍壽)공, 박병묵(朴炳默)공, 최필달(崔必達)공, 조선조의 조영무(趙英茂)공, 남이(南怡)장군, 이준(李浚)공, 이순신(李舜臣)장군, 김시민(金時敏)장군, 이수일(李守一)공, 정충신(鄭忠信)장군, 구인후(具仁候)공, 그리고 우리 철원의 김응하(金應河)장군등 모두 열두분 이신데요. 이분들중에 매우 특별한이를 한분 소개해 볼까 합니다. 충무공 정충신(1576년,선조9년-1636년,인조14년)장군! 본관은 광주. 호는 만운(晩雲). 1685년 숙종11년 충무공시호를 받으심. 다른분들은 모두 명문거족의 뼈대있는 집안 출신들 이지만, 유독 이분만은 개천에서 용나듯이 미천한 신분을 극복하고 입신출세를 하였는데요. 그의 부친은 광주목사의 통인(通引,수령의 심부름꾼)으로, 초년에 부인을 잃고 50이 넘도록 홀아비신세로 지내다가, 우연히 못생긴 관비를 만나 그를 낳았지요. 정충신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신동이란 칭찬을 들었는데, 마침 권율(權慄)이 광주목사로 부임하자, 아홉 살 때부터 그의 가복(家僕)으로 들어가 계도를 받으며 성장하지요. 임진왜란이 일어났을때는 17세의 어린나이로, 자진해서 권목사의 장계를 갖고 수천리 적진속을 달려 의주행재소의 선조에게 보고를 드리지요. 이에 임금님은 그의 충성과 용기를 크게 칭찬하여 면천(免賤)시켜 주시구요. 당시 병조판서였던 백사이항복은, 정충신의 비범함을 눈여겨보고 곁에 머물게 하면서, 학문과 무예를 닦도록 지도해 줍니다. 그래서 그해 가을 행재소의 무과시험에 급제 하고, 권율의 막내사위가 되지요. 그를 가르쳤던 백사가 권율의 큰 사위니까 결국 백사와는 동서지간이 되는데, 나중에 백사가 북청으로 유배 당한후 돌아갈때까지 시종하면서 부친같이 모셨다고 하네요. 정충신은 무관으로서 청렴과 충직한 자세로 직분을 다하였고, 국경수비와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등, 많은 공로를 쌓아 부원수,포도대장,평안도병마절도사에 오르지요. 1626년 정묘호란이 있기 몇년전의 일화 한토막. 누루하치(후일의 청태조)의 세력이 명을 공략하면서 조선을 압박해 오자 조선에서는 협상사신을 보내는데, 이때 평안병사로 있던 그가 자진해 나서지요. 비록 체수는 작았지만, 까다로운 만주족과의 협상을 자임 할만큼 지혜와 담력도 뛰어 났거든요. 누루하치는 조선사신의 기를 초작에 꺾을 심산으로, 군막입구에 기치창검을 살벌하게 도열시키고, 큰 가마솥에 기름을 펄펄 끓게한 후에 정충신을 맞지요. 되놈왈, ‘너의 나라에는 사람이 그렇게도 없어서 너 같은 소소인을 보내느냐?’. 정충신 답왈, ‘우리나라에는 사람을 쓰는데 수준이 따로 있오. 인의와 도덕을 숭상하는 나라에는 대대인을 보내지만, 힘만믿고 포악한 나라에는 나같은 소소인을 보냅니다. 그런데 나같은 소소인이 무엇이 무서워 창검의 숲을 세웠나요?’. 되놈이 감탄하여 왈,‘가아(可兒))! 가아!(잘난사람,훌륭한 인물)’. 그의 명언 한마디 ‘한 개인은 명분 때문에 죽을수 있지만, 한 국가가 명분 때문에 죽을수는 없다’. 현실론의 주화파와 명분론의 주전파가 치열하게 다투던 당시의 시대상황이 떠 오르는 군요. 주어진 여건과 시대환경을 탓하지않고, 국궁진력(鞠躬盡力)의 자세로 최선을 다한 인간승리의 모습에 가슴이 찡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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