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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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부담없이 즐기는 우리역사 얘기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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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부담없이 즐기는 우리역사 얘기⑪

- 천추의 역사는 원칙과 대도 -

~@img!!김영칠 수필가 새해벽두에는 밝은 마음으로 덕담을 나누면서 시작하는게 우리풍속인데요.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배려와 관용으로 우리사회가 튼실하게 발전했으면 하는 맘 간절하네요. 서로믿고 원칙이 서고 대의명분이 존중받고 그리고, 긴 시각으로 미래와 역사를 바라 볼줄아는 풍토가 이루어 졌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욕심을 부린다고 얻을수 있는것도 아니고, 조급하게 서두른다고 빨리 되는것도 아니니, 인생과 세상을 비운마음으로 대하고, ‘느림의 미학(美學)’을 즐기는 심정으로 사는것도 삶의 지혜가 아닐는지요. 눈덮인 산하에 낙낙장송의 푸르름이 고고한 희망을 약속하는 년초입니다. 잠시 한편의 고전으로 도란도란 깊은밤을 나누면서 시원한 동치미국수를 즐기는 낭만은 어떨까요? 오늘은 역사에 기록된 춘추대의(春秋大義)의 아름다운 얘기 몇가지를 들려 드리고자 합니다. 비록 중국의 사례이긴 합니다만, 천하공의에 순응한 대의명분이, 얼마나 아름답고 영원한가를 다음 얘기에서 확인 할수 있는데요. 주나라의 주공단과, 촉한의 ‘승상 제갈량’, 청나라의 ‘예친왕 도르곤’입니다. ● ‘주공단(周公旦)’은, 아버지 문왕과 형인 무왕을 도와 주나라(BC1046-BC256) 를 건국한 성인이지요. 무왕이 어린 아들을 두고 죽자, 조카성왕의 섭정으로 7년간 나라를 다스리면서 주나라의 기초를 닦았지요. 은나라의 유민을 받아들여 정착시키고, 예악창제와 전장(典章)제도를 정리하는 한편, 중국역사상 최초로 봉건세습제를 제도화하여 경세치국의 메커니즘을 구축하였지요. 그리고 성왕이 장성하자 대권을 조카에게 넘겨주고 물러났습니다. 그당시 까지만 해도 왕위계승에 대한 원칙이 없었고, 또 실권을 주공단이 쥐고 있었기 때문에, 욕심만 내면 얼마든지 왕위를 차지할수 있었지만, 주공단은 마음을 비운 사람이었지요. 공자는 주공단의 올바름과 떳떳함을 이상정치의 표본으로 그렸고, 유교형성의 밑거름으로 삼았습니다. ● 촉한(蜀漢,AD221-263)의 ‘제갈량(諸葛亮)’은 너무나 유명한 인물이지요. 그는 유비현덕의 삼고초려(三顧草廬)로 27세에 세상을 나왔습니다. 일찍이 초야에 묻혀 있을때부터 천하삼분계의 융중대책(隆中對策)을 마련하고 있다가, 주군을 만나자 이를 실천에 옮기게 되는데요. 그러나 불행하게도 유비가 중도에 죽는데, 임종전에 ‘아들 유선(劉禪)을 부탁한다. 유충하고 우매한 점도 많으니, 사직을 위해 필요하다면 그대가 유선을 대신 해도 좋다’고 유언하지요. 천하 삼국중 가장 취약한 형세의 촉한으로서는 국내외로 어려움이 컸지만, 제갈량은 딴맘 먹지않고 진충보국을 다 합니다. 그의 충정은 중원정벌을 떠나면서 후주유선에게 올린 ‘전출사표(前出師表)’에 잘 나타나 있는데요. 출사표를 읽고 울지않은 이가 없었다 할만큼 천하명문이지요. ‘...신은 본래 하찮은 포의로 남양땅에서 논밭이나 갈면서 난세에 목숨을 부지하려 하였으나, 선제께서 몸소 세 번씩이나 초려를 찾으셔서 당세의 일을 하문하시니, 신은 감격하여 마침내 선제를 위해 몸을 바치리라 결심하고 그 뜻에 응 하였사 옵니다...’ 제갈량은 사실상 약소한 제국의 실패한 재상이었음에도,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중심인물로서 특출하게 부각되고 있는데요. 그것은 시종일관 보여준 충성심과 의리, 절조와 기개, 뛰어난 기략과 지혜로 원칙과 대도를 걸었기 때문에, 역사를 엄정하게 기술하는 춘추필법(春秋筆法)에서는 그를 으뜸인물로 평가하지요. ● 청나라(AD1616-1912)의 ‘예친왕도르곤’ 입니다. 청태조 누루하치는 모두 열여섯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그중 여덟째인 2대황제 태종과 열네번째인 도르곤이 가장 영특 했지요. 1643년 태종이 어린아들을 남기고 급서하는데, 귀족과 대신들이 자신을 후계자로 지명하자 이를 단호히 거절하고, 여섯 살의 어린조카를 강력하게 추천 하지요. 그리고 황부의 섭정왕으로 3대 순치제를 도와 건국초반을 다집니다. 산해관을 넘어 중원으로 들어가, 명나라의 최후항복을 받아 천하통일을 완성하구요. 그래서 순치제를 이어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로 연결되는 이른바 ‘강건성세’의 번영을 이룩하지요. 도르곤이 대권의 야심을 접도록 만든 것은, 태종의 계비(季妃,두번째 부인)이자 순치제의 모후인 효장문황후와 도르곤의 간절한 사랑이 크게 작용했대요. 문황후는 본래 도르곤의 연인이었는데, 태종이 동생의 애인을 가로챈 거고, 도르곤은 형이 죽은후에 그 여인과 다시 만나고... 참 희한하고 복잡하군요. 인간사 재미 있네요. (김영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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