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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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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 탐방기

김영칠 (철원향교 명예기자)

~@img!!문화유산지킴이 회원들과 옥산서원을 찾은 것은 만추의 서정이 짙게 묻어나는 10월의 어느날 이었다. 경주남산의 마애석불과 괘릉, 양동마을, 옥산리의 정혜사지 13층석탑을 돌아보고 오는길 이었다. 현란한 단풍의 경염(競艶)이 흥겨운 잔치를 마무리 하는듯, 농익은 잎사귀들이 하나둘 지기 시작한다. 옥산서원으로 들어서는 초입에는 고고한 선비의 지성과 기개를 상징 하듯이, 낙락장송 세 그루가 청정한 운치를 더하니, 우리일행이 예사롭지않은 땅에 들어 섰음을 짐작하게 했다. 한껏 간편한 복장이지만 조신한 자세로 마음을 가다듬고 서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경이로운 것은, 늦가을인데도 울창한 수림으로 하늘을 가리운 진입로 양쪽의 고수거목과 아름다운 계곡의 어울림 이었다. 서원앞을 흐르는 자계천의 옥류하며 시원스러운 너러반석과 기기묘묘한 수석의 경관, 그 속에 고즈넉하게 자리한 서원의 예스러움은 우리를 한폭의 진경산수화 속으로 몰입하게 만들었다. 안내하는 문화유산해설사를 따라 정문인 역락문(亦樂門)우측의 협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섰다. 마당정면에는 옥산서원의 편액이 걸려있는 1층 팔작지붕의 강학당, 동서양재인 암수재와 민구재, 그리고 우리가 들어온 정문인 2층누마루의 무변루가 엄격한 구도로 배치되어 있다. 후면에는 사당인 체인묘, 신도비각, 판각과 경각등도 질서정연했다. 서원이름을 따온 자옥산(紫玉山)과 마주보는 서향의 자리앉음새로 전학후묘의 구조다. 강학당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이곳에 서려진 세월의 두께를 헤아려 보았다. 옥산서원! 추사의 일필휘지가 사우의 품격을 더하고, 강학공간인 구인당(求仁堂)의 편액은 한석봉의 명필로 그 이름을 빛내니, 그것은 주인이신 이언적선생을 기리는 후학들의 깊고 도타운 정에 기인함이라. 선생은 조선성종22년(1491) 경주의 양동 서백당에서 태어나, 김종직의 문하생인 외삼촌 손중돈에게 사사하였다. 호는 회재(晦齋), 자계(紫溪), 자계옹(紫溪翁)이다. 23세에 문과급제한후 내외직을 두루섭렵하면서 학문과 선정으로 중망을 받았고, 명종 즉위후(1545)에는 원상으로 정국수습과 서정을 주관하여 위사공신(衛社功臣)이 되었다. 말년에는 양제역벽서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되어 유배된후 배소인 강계에서 62세로 돌아갔다. 동국5현의 한분으로 선조1년(1568) 영의정 추증과 함께 문원공의 시호를 받았고, 광해군2년(1610)에 성균관 문묘에 종사되었다. 퇴계선생은 회재선생의 학통을 직접 계승하지는 않았지만, 김종직의 적통으로 학문을 계승하였으므로 자신의 학문적 연원을 회재선생에 연결시켰다. 퇴계이후의 영남학자들도 자신들의 학문적 근본을 김종직-손중돈-이언적-이황으로 연결하여, 김종직을 태두로 받들어 왔다. 옥산서원의 맞은편 언덕에는 회재선생이 기거하면서 학문을 닦았던 독락당(獨樂堂)이 있다. 솟을대문이 으젓하고 안채와 사랑채의 구획이 분명한 조선시대 반가의 전통한옥으로, 지금도 후손이 거주하면서 관리를 하고 있었다. 안채에서 뒷문으로 나와 벽채를 따라가니, 담장이 창살로 개방되어 사랑채에서 밖의 자계천경관이 훤히 내다 보이도록 개방해 놓은게 재미 있었다. 근엄한 선비로 학문에 매진하면서도 때로는 자연을 벗하며 우주를 호흡하는 것은 우리선현들의 멋과 풍류였음을 느끼게 했다. 선생은 자옥산아래 이 독락당을 지으면서 “옛날 어진 선비만이 어찌홀로(獨) 그렇지 않겠는가. 자신의 도를 즐겼고(樂) 사람의 권세를 잊었다”라는 맹자의 진심장구를 읊었다 한다. 선생이 가신지 올해로 460년의 세월이 흘렀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으니 허망한게 인생사이기도 하다. 허나 선생이 남기신 고절한 인품과 깊은 학문적 향기는 만세를 두고 우리가슴을 울릴것이다. 자계천 세심대의 청아한 목소리와 준수한 자옥산의 전송을 받으며 옥산서원을 하직하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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