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금)
~@img!!김영칠 수필가 오늘날 우리사회는 소통부재에 따른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음은 물론이고, 상대에 대한 극단적인 불신팽배로 여기저기서 각진 소리들이 나오고 있는데요. 만약에 우리 몸의 내부구조를 이루고있는 오장육부(五臟六腑)가, 이처럼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근간에 어느 서양의 생물학자가, 지금처럼 닫혀있는 학문간의 단절을 심각한 현상으로 지적하면서, 열린학문의 창조성을 제시한바가 있는데요. 자기논리의 고집, 독단적 가치관의 절대화는, 또다른 대립과 파탄을 야기...
~@img!!김영칠 수필가 지난번에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 말씀을 잠깐 드렸는데요. ‘동북공정’이란, 동북쪽의 역사를 중국화해서 근거와 명분을 만들고, 지배력을 강화내지 영속화하려는 원대한 책략이지요. 과거 만주와 요동일대에서 이루어진 고조선,고구려, 발해등 우리역사를 송두리째 중국의 지방역사로 둔갑시키고 예속화 하려는 겁니다. 우리입장에서는 우리역사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중대한 문제 인데요. 그런데 중국정부가 추진하는 역사침탈과 왜곡은, 동북공정을 비롯하여 다른 분야에서도 광범위하고 심도있게 진행중이란 점에 심각...
~@img!!김영칠 수필가 ‘구비쳐 흘러오는 압록강 위에/뗏노래 가락마다 구슬프구나/강건너 만주벌은 고구려 옛땅/줄어든 이지도를 누가 그렸나’. 노산 이은상 선생의 찬가 ‘조국강산’인데요. 수년전에 창춘과 하얼빈등 중국의 만주지역 일부를 여행 한적이 있습니다. 마지막황제 푸이가 살았던 위만황궁(僞滿皇宮), 일본군의 생체실험으로 악명높은 731부대유적, 관동군사령부 옛건물, 안중근의사의 의거현장인 하얼빈역등을 둘러 보았는데요. 특히 지안현(集安縣) 퉁거우(通溝)에 있는, ‘광개토대왕비’를 찾았을때의 감회를 지금도 잊을...
~@img!!김영칠 수필가 사람에 의한 사람의 지배는 오랜역사를 통하여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습니다. 왕조시대에는 한사람의 임금이 죽을때까지 권력을 누렸다면, 오늘날은 국민의 손으로 뽑힌 지도자가 주어진 기간 만큼만 나라를 다스립니다. 국가 최고 지도자의 자질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그 시대와 역사가 달라질수 있는데요. 민주주의 세상에서는 지도자가 맘에 않들면 선거로 갈아치우면 되지만, 왕조시대에는 함부로 바꿀수가 없어서 잘못된 임금을 만나면 나라가 시끄럽고 백성들이 고통을 받았지요. 원래 임금자리는 신하중에서 유능...
~@img!!김영칠 수필가 지금부터 103년전인 1909년 10월26일, 우리 안중근의사가 일본의 이등박문을 통쾌하게 응징 하였는데요. 안의사가 일본법정에서 주장한 이등박문의 죄목은 무려 열다섯가지 입니다. 첫째, 우리국모를 시해한죄, 둘째, 대한황제를 폐위시킨 죄, 셋째, 5조약과 7조약을 강제로 맺은죄 등등. 이등박문의 죄악은 이외에도 수없이 많지만, 그의 간악한 책략으로 우리가 입은 가장 큰 정신적 피해의 하나는 “식민사관(植民史觀)”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민족은 당파싸움이나 하고, 자립심도 없어 중국에 기대사...
~@img!!김영칠 수필가 “아이는 어릴적에 단단히 가르쳐야 하고, 며느리는 처음 들어 왔을때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敎兒嬰孩 敎婦初來,교아영해 교부초래). 아이를 사랑하거든 매를 많이 주고, 아이를 미워하거든 먹는 것을 많이 주라(憐兒多與棒 憎兒多與食,련아다여봉 증아다여식)”는 옛말씀이 있는데요. 요즘 문제가 되고있는 학교폭력사태를 보면서, 걱정이 많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복잡한 현대생활과 어지러운 교육환경으로 인한 문제인 만큼, 효과적으로 대처하기는 쉽지 않겠으나, 인간교육이란 관점에서 보면 문...
~@img!!김영칠 수필가 새해벽두에는 밝은 마음으로 덕담을 나누면서 시작하는게 우리풍속인데요.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배려와 관용으로 우리사회가 튼실하게 발전했으면 하는 맘 간절하네요. 서로믿고 원칙이 서고 대의명분이 존중받고 그리고, 긴 시각으로 미래와 역사를 바라 볼줄아는 풍토가 이루어 졌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욕심을 부린다고 얻을수 있는것도 아니고, 조급하게 서두른다고 빨리 되는것도 아니니, 인생과 세상을 비운마음으로 대하고, ‘느림의 미학(美學)’을 즐기는 심정으로 사는것도 삶의 지혜가 아닐는지요. 눈덮인 ...
~@img!!김영칠 수필가 임진년(壬辰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제왕의 신성한 덕을 갖춘 용띠해 인 만큼, 영험한 품격과 진중한 자세로 나라발전이 이루어 졌으면 좋겠습니다. 독자제현의 댁내에도 평강과 만복이 충만 하시길 빕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임진년의 지난역사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420년전인 1592년의 임진년 으로부터 올해까지 여덟 번의 육갑을 혜아려 보면, 우리민족은 참으로 장대한 역사의 물결을 혜쳐 왔습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후유증, 청과의 다툼과 백두산 정계비, 당쟁과 탕평책, 천주교 확산과 세...
~@img!!김 영칠 수필가 나라와 겨레를 위해 일하다 돌아간 분들을 어떻게 예우해야 할까요? 국가의 품격, 나라의 정체성, 국민의 자부심과 관련된 문제라고 봅니다만, 우리는 지난역사에서 많은걸 배울수 있지요. 왕조시대의 ‘시호(諡號)제도’는 국가대의의 상징이었습니다. 학문과 치세에서 큰 업적을 남긴 경세가를 추증(追贈)하여 문묘에 배향 한다든지, 국가위난시에 몸을 바친 장군을 만인지상의 품계로 올려서 만세사표로 받드는 일이 치세의 으뜸 이었지요. 충현사업(忠顯事業)은, 곧 국가의 정신이자 중심가치 이니까요. 시호는...
~@img!!김 영칠 수필가 우리 조상님들은 공부를 어떻게 하셨을까요?. 책도 부족하고 불도 신통치 않고 신분차별 많던 시대. 교육시설미비와 물자부족, 인적교류가 어렵던 시절에 공부를 어떻게 하셨는지? 그리고 선비들의 공부하는 기본자세나 방법은 어떠 했는지?. 조선조의 교육제도를 보면 국공립 교육기관으로는, 서울의 성균관과 4부학당, 지방은 각 고을마다 1개소씩 214개소의 향교가 운영 되었구요. 사립으로는 서원이 약400여개소, 서당은 웬만한 마을마다 1개소정도 있었대요. 서당이 초등교육이라면 향교와 사부학당, 서원은 ...
~@img!!김 영칠 수필가 얼마전에 여주를 다녀왔습니다. 여주하면 떠오르는 임금님 세종대왕! 그런데요. 세종은 우리가 잘아는 분이지만요. 바로 그 옆에 또다른 영릉이 있었어요. 같은 영릉이지만 세종의 능호는 영릉(英陵). 효종(孝宗,17대, 1619-1659)은 영릉(寧陵)이었지요. 효종의 묘역은 같은언덕에 위아래로 자좌오향(정남쪽 방향)의 쌍릉을 이룬 모습이 고즈넉한데, 늦가을의 풍치가 350여년의 전설과 함께 서리서리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1637년 정월그믐. 찬바람이 몰아치는 송파삼전도 벌판. 아홉계...
~@img!!“갈밭마을 젊은여인 울음도 서러워라/관아 앞에 울부짖다 하늘보고 호소하네/시아버지 죽어서 이미 상복 입었고/갓난아이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3대의 이름이 군적에 실리다니/달려가서 억울함을 호소해도 범같은 문지기 버티어 있고/아전이 호통하니 단벌소만 끌려갔네/남편 문득 칼을 갈아 방안으로 뛰어들자 붉은피 자리에 낭자 하니/스스로 한탄하네 ‘아이낳은 죄로구나’ (생략).” 낳은지 3일된 갓난아이를 장정으로 둔갑하여 군적에 올리고 세금을 독촉하니, 돈이 없어 못내니까 한 마리뿐인 소를 끌어가 버렸는데, 이를 본 남편이 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