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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욕설과 비방

기사입력 2011.08.24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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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g!![독자기고] 욕설과 비방 국운이 쇄하면 강대국의 제물이 된다. 청나라는 인조 1636년 12월에 빠르게 침략을 해 왔다. 조선에게 요구한 사항이 수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빌미였다. 조선은 이미 7년간의 임진왜란을 치렀던 터라 많이 지쳐 있었고 인조는 추위와 비축하지 못한 식량에 결국 40일 만에 비굴하게 항복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는 많은 부녀자들을 성노리개 감으로 잡아갔다. 조선 백성들은 궁궐 앞에서 아내와 딸과 며느리를 찾아달라며 호소했다. 청은 그냥 돌려보낼 수 없다고 하자 백성들은 전답을 파는 등 댓 가를 치르고 부녀자들을 찾아오게 됐다. 결국 돈을 주고 사람을 데려오는「속환」으로 고향에 돌아왔다. 하지만 이런 수모를 겪은 부녀자들은 또 한 번의 아픔을 겪는다. 이미 실절했다는 이유로 남편과 시부모에게 버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호로자식과 환향녀」 갖은 수모를 당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해서 붙여진 환향녀의 유래가 이처럼 애틋하다. 환란 중이라 청나라에 잡혀간 부녀자들 대부분은 성노리개 감으로 있었기에 임신을 해서 들어온 이들도 많았고 여기서 태어난 자식이 바로 아비 없는 자식이란 뜻으로 호로 자식이란 말이 생겼다. 즉 오랑캐 자식인 게다. 잡혀간 부녀자들은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난잡한 성문화에 익숙해야 했고 밤거리에서는 부적절한 생활도 마다했다. 이 일은 큰 사회적 문제가 되어 밤이 되면 각자 가정에서 노인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 부녀자들을 단속하는 일까지 생겼다. 외출이라도 하게 되면 눈만 내놓고 머리부터 치마를 길게 둘러썼다. 옆에는 물론 감시자가 따라 붙었다. 사극에서 많이 본 모습이 이때부터 생겨난 일이 아닌가 싶다. 환향녀는 결국 멸시의 대상으로 조롱하는 받는 화냥녀가 되었고 더욱 악화되어 화냥년으로 되고 말았다. 호로 자식이 버릇없는 자식을 부르는 단순한 욕설이 아니고 조상을 탓해야 하는 유래가 있었다는 걸 알고 나면 욕도 가려서 해야 될 듯싶다. 욕설과 비방은 지탄의 언어인 만큼 삼가야 한다. 상황에 따라 꾸짖음이 필요한 경우라면 순화된 언어를 구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입에 담기 무서운 욕이 바로 호로 자식과 환양 년이다. 자신의 무지함을 드러내는 욕설과 비방은 입에 담지 말아야 한다. 옳은 말과 곧은 행동은 자신의 인격이다. ××를 빼고는 의사 전달이 안 되는가? 부정적 사고를 긍정적 사고로 바꾸어보자. 욕심 많은 이를 탓 할 땐 돈방석에 앉을 위인은 어떨까? 꽤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조상을 탓하고 치욕의 역사를 끄집는 욕설과 자존심까지 건드리는 욕설은 금해야 한다. 무심코 내 뱉은 한마디가 자신의 무지함을 드러내고 조상을 욕되게 할 뿐이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 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방랑시인으로 유명한 난고(蘭皐) 김삿갓은 등용문 이였던 과거 시험 답안지에 자신이 쓴 글이 정답 이였지만 조상을 욕되게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며 평생을 삿갓 쓴 방랑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점잖은 체면에 굳이 욕이 필요할 만한 상황이라면 사태를 파악하고 수습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하고 조상을 탓하는 욕설은 금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욕도 절대해서는 안 되지만 말이다. 한국농어촌공사 영북지사 박종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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