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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부담없이 즐기는 우리 역사얘기

기사입력 2011.09.30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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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임금님들의 가족관계 ~@img!!김 영칠(철원향교 명예기자) 우리나라 역대 임금님들은 가족관계가 어떨까요? 부인은 몇분을 두셨고, 자식은 몇을 낳으셨는지? 궁금하군요. 역대왕조의 나라경영체제는 거의가 중국의 제도를 따랐는데요. 대략2600년전 중국 주나라의 제도에 의하면, 천자에게는 등급에 따라 정부인이 셋, 빈(嬪)이 아홉, 세부(世婦))가 일곱, 어처(御妻)가 여든하나이고, 첩(妾)은 제한을 두지 않았다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주나라황제는 천이백명의 후궁을 거느렸고, 진시황제는 만여명, 한무제는 만 팔천여명, 그런가 하면 당태종은 무려 4만여명 이었대요. 이건 아마 과장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숫자 부풀림 같기도 하구요. 흔히들 삼천궁녀라 하는데, 그건 실제숫자가 아니고, 그만큼 많다는 일반적표현이라 하는군요. 고려조의 베스트는 단연 태조왕건 입니다. 그는 공식적으로 스물아홉명의 부인에게서 서른여섯명의 자녀를 두었지요. 부인이 이렇게 많았던 것은 후삼국 통일과정에서 지역통합과 왕권강화를 위한 정략결혼 때문이라고 하네요. 고려는 100여년이 넘게 원나라의 지배를 받으면서 충렬왕,충선왕,충숙왕,충혜왕,충목왕,공민왕등 여섯이 원의 사위노릇을 했는데요. 특히 성불구자로 알려진 31대 공민왕은, 원출신인 노국대장공주를 비롯하여 부인이 여섯인데, 그중 반야는 승려신돈의 비첩 이었지요. 그래서 32대 우왕은 신돈의 아들이란 얘기도 있구요. 그런 우왕은 부인아홉에 달랑 아들하나를 낳았는데, 그가 33대 창왕. 그의 아들인 34대 공양왕은 부인하나에서 자녀넷을 낳았지만, 비명에 가면서 고려는 475년만에 문을 닫았지요. 조선왕조의 태조이성계는 부인셋에서 자녀열셋, 학자임금이신 4대 세종대왕은, 부인여섯에서 5대 문종과 7대 세조를 비롯한 18남 4녀를 낳으셨죠. 한글창제등 많은일을 하시면서 언제 그 많은 애들을 만드셨는지? 조선조의 베스트는 아무래도 9대 성종 일거예요. 그는 13세에 등극하여 25년간 재위하면서 세종 다음가는 많은 치적을 쌓았는데, 부인 열둘에서 스물여덟의 자녀를 두고 보령38세에 돌아간걸 보면, 아무래도 너무 밝힌게 단명의 원인 아닐는지. 19대 숙종이 무수리 최씨에게서 낳은 21대 영조는, 재위52년에 82세의 최장수를 누리셨죠. 탕평책등 영정조 문화르네상스시대를 열기도 하였는데, 세자인 자기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죽일마큼 성정이 대단했대요. 정비인 정성왕후가 승하하자, 66세의 고령에 15세의 계비를 맞아 들일만큼 기력이 왕성 하셨다나요. 구리시의 동구릉에 가보면, 부인둘을 사이좋게 거느리고 3연릉으로 누워계신 임금님을 만날 수 있는데 24대 헌종입니다. 여덟살에 등극하여 재위15년만인 보령23세에 승하했는데, 너무 여색을 가까이 하셔서 피와 가래를 토하고 돌아갔대요. 일본낭인들 손에 시해당한 명성황후 민씨의 남편인 26대 고종은, 일곱부인 한테서 여덟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어느날 식혜를 잡수신후 갑작스런 토사곽란 끝에 운명하셨대요. 고종의 독살설과 관련하여 간교한 왜놈들 짓이란 소문이 많았지요. 그리고 쓸개빠진 을사오적신의 패역으로, 조선조는 519년만에 명을 다했습니다. 임금의 목숨이나 평범한 백성의 신세나, 허망하긴 매일반 이네요. 쯧쯧. (김 영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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