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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없이 즐기는 우리역사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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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없이 즐기는 우리역사 얘기

조선조의 교육제도와 선비들의 공부모습

~@img!!김 영칠 수필가 우리 조상님들은 공부를 어떻게 하셨을까요?. 책도 부족하고 불도 신통치 않고 신분차별 많던 시대. 교육시설미비와 물자부족, 인적교류가 어렵던 시절에 공부를 어떻게 하셨는지? 그리고 선비들의 공부하는 기본자세나 방법은 어떠 했는지?. 조선조의 교육제도를 보면 국공립 교육기관으로는, 서울의 성균관과 4부학당, 지방은 각 고을마다 1개소씩 214개소의 향교가 운영 되었구요. 사립으로는 서원이 약400여개소, 서당은 웬만한 마을마다 1개소정도 있었대요. 서당이 초등교육이라면 향교와 사부학당, 서원은 중고등수준이고, 성균관은 국립대학격이라 할까요. 후기에 이르러 향교의 운영이 파행으로 흐른 반면, 관료출신과 학자들에 의한 서원의 운영은 상대적인 질적수준의 차별화로 우수인재들의 학문도장이 되기도 했구요. 선비의 일생은, 수교(受敎)와 수학(修學), 출사(出仕), 은퇴(隱退)의 4단계로 나눌수 있는데요. 6,7세까지는 집에서 부모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8,9세에 학당에 들어가 정식공부하는 수학기간을 거치면, 생원진사는 대략25세, 대과는 평균35세 전후에 보아 출사하게 되지요. 그래서 길게는 40-50년, 짧게는 10-20년을 벼슬살이 한후 대략 70중반쯤 물러나지요. 선비들의 교육과정은 기본적으로, 자기를 갈고닦는 ‘수기(修己)’와 세상에 나가 백성을 다스리는 ‘치인治人)’의 두 단계로 나눌수 있는데요.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선생 같이 수기와 학문에만 뜻을 두어, 왕이 13번을 불러도 일체 응하질 않은 분이 있는가 하면,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선생처럼 마지못해 잠시 출사했다 학문으로 돌아간 분,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선생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선생 같이, 학문과 치인을 겸한 경세의 큰 어른들도 계셨지요. 선비들이 수기와 학문하는 모습을 보면, 처절 하리만큼 철저했고, 가혹할 정도로 엄격했음을 기록에서 확인 할수 있는데요. 모름지기 학문을 하고자 한다면, 옛 선비들의 공부자세를 한번쯤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선비들은 책을 매우 신성시 했는데요. 그래서 책을 읽을 때면, 마치 무슨 의식을 거행하는 것처럼 정중 했대요. 책을 읽기 전에는 반드시 손을 깨끗이 씻고, 옷깃을 바로 잡은후에 독서를 시작 합니다. 독서하면 공자님의 ‘위편삼절(韋編三絶, 가죽으로 맨 역경이 여러번 끊어질 정도로 많이 읽음)’의 얘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만, 조선시대의 독서가로는,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1513-1577)선생과 구봉(龜峯) 송익필(宋翼弼, 1534-1599)선생, 중봉(重峯) 조헌(趙憲,1544-1592)선생을 손꼽지요. 미암은 주자대전을 배송(背誦, 책을 등뒤에 놓고 외움)하였고, 구봉은 주자어류를 모두 배송 하였으며, 중봉은 두가지를 모두 배송 하였대요. 주자대전은 90책, 주자어류는 104권 50책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인데, 주자학공부의 필독서 라는군요. 조선의 독서광으로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1604-1684)이란 분이 계셨는데요. 그는 어려서 아주 우둔하였지만, 부단한 글 공부를 통해 조선의 손꼽히는 인물이 되었지요. 1만번 이상 읽은글이 36편이나 되고, 그중 사기의 백이전(伯夷傳)은 무려 11만3천번을 넘게 읽었다는군요. 그래서 각고의 노력 끝에 59세에 문과급제를 하지요. 백곡이 독서기에서 밝힌 책을 보면, 경전과 역사서, 문장가의 글 중에서 어떤 것은 6만-7만번씩 읽었으며, 적게 읽은것도 수천번 이었다는군요. 여기에 비하면, 중용을 8백번 읽은 선조때의 임제(林悌,1549-1587)는 쨉도 않되지요. 아무튼 학문에 치중한 선비나, 과거시험을 통해 조정관료로 나아간 분들은, 사서와 삼경을 수백, 수천번 읽어서 외우고 당시(唐詩)는 최소한 300수 정도를 줄줄 외워 읇는 것이 기본 이었대요. 과거시험의 1차 대책은 시제가 나오면, 그에 합당한 논리를 즉석에서 작성했구요. 3차의 전시에서는 시무대책을 물으면, 경전과 사서, 시문구절을 줄줄 외워서 예를들고 종합적인 자기의견을 피력해야 하였다니, 학문의 깊이가 좀처럼 깊지 않고는 않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조선왕조가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500년이상을 지탱할수 있었던 근본동력은, 이와같이 지독한 공부벌레들과 투철한 두뇌집단의 뒷받침 때문 아닐까요.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은, 문치와 문화의 특질에 대한 또다른 표현 같기도 합니다. (김영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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