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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부담없이 즐기는 우리역사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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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부담없이 즐기는 우리역사 얘기

죽어야 산다(必死則生, 필사즉생)

~@img!!김영칠 수필가 임진년(壬辰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제왕의 신성한 덕을 갖춘 용띠해 인 만큼, 영험한 품격과 진중한 자세로 나라발전이 이루어 졌으면 좋겠습니다. 독자제현의 댁내에도 평강과 만복이 충만 하시길 빕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임진년의 지난역사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420년전인 1592년의 임진년 으로부터 올해까지 여덟 번의 육갑을 혜아려 보면, 우리민족은 참으로 장대한 역사의 물결을 혜쳐 왔습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후유증, 청과의 다툼과 백두산 정계비, 당쟁과 탕평책, 천주교 확산과 세도정치, 서구열강의 침탈, 그리고 6.25의 참화등. 그러고 보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마음 편했던 적이 한번도 없었군요. 이제 또다시 임진년을 맞습니다. 우리는 60년전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세계에 우뚝한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분단의 비극은 상존하고, 대립과 갈등, 불신은 더 깊어지는 양상입니다. 시대조류는 격랑처럼 밀려들고, 주위환경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속으로 빠져 드는데, 우리사회는 방향타를 잡아주는 선장이 없는 듯 불안하기만 하구요. 소통부재,양극화의 심화, 철면피와 도덕불감증, 이념대립, 경박한 풍조의 범람으로 어지럽습니다. 원로가 없고 중심이 없는 사회, 국가대의를 밝혀주는 명분과 사명감이 실종된 상실의 시대를 살고있는 것은 아닌지요? 이런때 일수록 지난역사를 되돌아보고, 비상한 깨달음을 얻어야 할것 같군요. 현실상황과 미래역사를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살피는 지혜, 창조적 파괴를 통한 재탄생의 결단,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대전환이 시급한것 같구요. 흔히들 최악의 위기를 “백척간두”라고 합니다만, 우리는 임진왜란을 절체절명의 국가위기로 배웠지요. 왜란 7년전쟁중 특히 1597년 9월의 “명량해전(鳴梁海戰)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이 싸움은 어쩌면 건곤일척(乾坤一擲)으로 천하를 겨루었던 항우의 침선파부(沈船破釜)나, 한신의 배수진(背水陣)보다 더한 비장함이 있고, 그런 점에서 우리민족의 근기와 저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감투정신의 백미가 아닐까 합니다. 명량해전 직전의 상황은, 상상을 뛰어넘는 악조건 이었지요. 이충무공이 모함을 받아 옥에 갇힌것이 1597.3.4.일. 후임통제사 원균이 칠천량해전의 참패로 160여척의 대함대를 모두 잃고, 그 자신도 죽은 것은 같은해 7월16일. 우리해군은 완전히 궤멸되어 재기불능한 상태에 있었고, 남해를 제패한 왜군은 본격적으로 서해진출을 도모하려는 숨가뿐 순간 이었지요. 이충무공은 죽음직전에, 대신 정탁(鄭琢,1526-1605)의 구명상소로 28일만에 풀려나 백의종군중 이었구요. 이에 다급해진 조정에서는, 동년7월23일 이충무공을 통제사에 다시 기용하지요. 공은 경상우수사 배설이 도피시켰던 전함12척을 인수하여 전력을 보강 한후, 숨돌릴 사이도 없이 그해 9월16일 서해로 진출하려는 왜적함대를 명량해협에서 격파하지요. 왜적은 133척중 주력31척을 잃고, 나머지도 지리멸열 패주 하였구요. 최악의 제로상태에서 불과 60일만에 이룬 대첩의 쾌거. 명량대첩의 요인은, ‘울돌목’의 물길을 혜아린 이충무공의 뛰어난 전략과 지혜, 집중과 기민의 탁월한 군사운용, 그리고 국가위난앞에 모든걸 걸겠다고 하는, 최고장수다운 책임감과 희생정신등이 총체적으로 응결된 결과라 하겠습니다. 지도자 한사람의 능력여하에 따라, 역사는 극과 극으로 달라질수 있다는 가르침 인데요. 명량해전에 임할 당시의 이충무공은,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 백의종군중에 어머니를 잃은 불효의 자책등으로 인간적인 번뇌가 깊었음에도, 시종일관 확고한 충성심, 고고하고 강인한 품격, 추상같은 군령으로 감격적인 승리를 이룩하였지요. 이충무공이 명량해전 전날인 1597.9.15일저녁, 휘하 장병들에게 내린 훈시는 다음과 같이 결연하고 지엄 합니다.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 (김영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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