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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부담없이 즐기는 우리역사 얘기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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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부담없이 즐기는 우리역사 얘기⑭

- 폭군(暴君)과 성군(聖君)의 갈림길-

~@img!!김영칠 수필가 사람에 의한 사람의 지배는 오랜역사를 통하여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습니다. 왕조시대에는 한사람의 임금이 죽을때까지 권력을 누렸다면, 오늘날은 국민의 손으로 뽑힌 지도자가 주어진 기간 만큼만 나라를 다스립니다. 국가 최고 지도자의 자질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그 시대와 역사가 달라질수 있는데요. 민주주의 세상에서는 지도자가 맘에 않들면 선거로 갈아치우면 되지만, 왕조시대에는 함부로 바꿀수가 없어서 잘못된 임금을 만나면 나라가 시끄럽고 백성들이 고통을 받았지요. 원래 임금자리는 신하중에서 유능한 자에게 물려주는 전통으로 출발을 했었대요.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의 오제본기(五帝本紀)를 보면, 요(堯)는 ‘내아들 단주는 천하를 물려받기에 자질이 부족하다’ 면서, 순(舜)에게 양위하였고, 순은 아들이 있음에도 역량이 부족하자 ‘한사람을 이롭게 하자고, 천하가 손해 볼수는 없지 않느냐’ 하고는, 우(禹)에게 임금자리를 넘겼지요. 이와같이 훌륭한 인재에게 임금자리 물려주는 것을 선양(禪讓)이라고 합니다. 선양제도가 무너진 것은, 훗날 동일왕통을 위한 부자세습의 전통으로 바뀌면서 비롯된 것이지요. 적자승계가 왕조의 법통인 종법(宗法)으로 자리잡은건 2천수백년전 주나라 때라 합니다. 문제는 적자가 훌륭하면 괜찮은데 모자랄 경우는 골치 아픈거지요. 좋은 조건임에도 암군(暗君)일 때는 나라가 헝클어지고, 나쁜환경이라도 현군(賢君)이 다스리면 빛나게 달라질수 있는건, 전적으로 임금의 능력문제라 하겠습니다. 나라와 백성들의 행,불행이 한 임금의 자질에 의해 좌우되고, 한 시대의 발전과 역사의 퇴보가 극명하게 갈려지기도 했는데요. 이런 사례를 우리는 연산군과 정조임금 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두분은 비극적인 부모의 불행과 거칠고 드센 사대부세력의 알력이라는 환경적공통점이 있었음에도, 개인적자질과 인성도야의 방법이 달랐고, 세상을 보는 인생관과 파고를 헤쳐나간 방향이 전혀 달랐습니다. 극과 극이라 할까요. 연산군은 어머니인 폐비신씨가 사약으로 죽은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가 나중에 고변에 의해 알게 되었지만, 정조는 어린 세손시절에 아버지가 뒤주에 갇혀죽는 것을 직접 보았지요. 연산군은 왕조 건국초반의 신선함과 강건함, 아버지성종의 덕정과 융합으로 안정된 통치기반을 물려 받았음에도, 간신배들의 농간에 휘둘려 이성을 잃고 실정한 나머지 반정으로 쫓겨났습니다. 이에 반해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의 장기집권과 독선, 부패와 이완의 말기적 증상, 극심한 당쟁과 외척들의 등살등, 생명의 위협속에서도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훌륭한 치적을 남겼습니다. 비극을 직접 당하였음에도 학문연마와 수양을 통하여, 인격완성과 덕을 쌓아 백성사랑의 아름다운 향기를 남긴 정조. 그런가 하면 젊은날부터 학문을 싫어하고 놀기를 즐기면서 무례방자 하였고, 남의 참소를 확대해석하여 무자비한 적개심으로 무고한 살육과 패륜을 서슴치 않은 희대의 폭군 연산군. 두 임금의 일생이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그러고 보면 폭군과 성군의 갈림길은 자질과 노력인 것 같군요. 왕세자에 대한 제왕학 교육은 법도가 엄중하고 철저 하였음에도, 당사자의 자질이 함량미달 일 경우는 어쩔도리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성종도 연산군을 세자로 정해놓고 많은 근심을 했다 합니다. 그러나 늦게얻은 아들인데다 적자니 어쩔수 없었다구요. 영조는 아들인 사도세자를 졸지에 죽였지만, 통열한 반성과 측은함으로 어린세손을 금지옥엽처럼 가르쳤습니다. 어린세손은 호랑이같은 할아버지 밑에서 숨소리하나 제대로 내지 못하고 근신하면서 오로지 학문과 덕행을 쌓는 공부에 매달렸지요. 그러나 어린 맘에 깃든 슬픈 가족사가 얼마나 큰 그림자를 지웠을까요? 인간적 비애와 괴로움을 참고 견디면서 때를 기다린 정조의 자세는, 인간 이산(李蒜, 정조의 이름)의 그릇이 얼마나 크고 깊은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데요. 그의 치세는 우리역사에서 ‘문예부흥시대’라 부를만큼 찬란한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재위24년동안 가장많은 순시와 의견수렴을 통하여 백성사랑을 실천했고, 학문장려와 국방강화에 힘썼습니다. 가장 어려운 시대를 제일 슬기롭고 영명하게 다스렸던 ‘참 지도자’의 모습을 예서 봅니다. (김영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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