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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부담없이 즐기는 우리역사 얘기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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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부담없이 즐기는 우리역사 얘기⑮

- 광개토대왕비와 역사왜곡 -

~@img!!김영칠 수필가 ‘구비쳐 흘러오는 압록강 위에/뗏노래 가락마다 구슬프구나/강건너 만주벌은 고구려 옛땅/줄어든 이지도를 누가 그렸나’. 노산 이은상 선생의 찬가 ‘조국강산’인데요. 수년전에 창춘과 하얼빈등 중국의 만주지역 일부를 여행 한적이 있습니다. 마지막황제 푸이가 살았던 위만황궁(僞滿皇宮), 일본군의 생체실험으로 악명높은 731부대유적, 관동군사령부 옛건물, 안중근의사의 의거현장인 하얼빈역등을 둘러 보았는데요. 특히 지안현(集安縣) 퉁거우(通溝)에 있는, ‘광개토대왕비’를 찾았을때의 감회를 지금도 잊을수가 없습니다. 만주대륙을 주름잡던 우리의 영광이, 이제는 남의 땅에서 남의 역사로 둔갑되는 가슴저린 회한 말입니다. 잃어버린 땅, 찾을 수 없는 과거, 역사왜곡의 치욕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약자의 서글픔. 연암 박지원선생의 말씀처럼 ‘대성통곡’을 하고픈 서러움이 밀물처럼 다가 왔었지요. 광개토대왕비에서 느끼는 통절한 회한과 절박한 비애는 다음 두가지 입니다. 하나는 일제에 의한 비문조작이고, 또 하나는 중국정부에 의한 고구려역사의 예속화 인데요. 결과적으로 우리역사의 침탈과 왜곡이란 점에서 맥락을 같이하지요. 고구려 제19대 광개토대왕(서기391-413)의 정식묘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崗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입니다. 18세에 즉위하여 재위 22년동안, 가장 넓은 영토를 개척한 정복군주인지라, 이런 굉장한 호칭이 붙여 진건데요. 그러나 이 비는 찬란한 명예에 걸맞지 않게, 참으로 오랜 세월동안 기구한 설움을 당해 왔습니다. 건립된지 254년만에 고구려가 당나라에 패하여 방대한 영토를 잃었고, 그후 1,400여년의 격동속에 만주는 말갈, 여진, 몽골등 여러종족들이 설치는 어지러운 무대가 되었지요. 대왕의 비석도 철저하게 잊혀진채 관심밖으로 방치 되었구요. 그러던중 1880년대에 대륙침략의 야욕을 품은 일본 육군참모본부가, 만주지역을 비밀답사 하는 과정에서 이 비를 발견하는데, 비극은 여기서 비롯 됩니다. 비문은 모두 1,802자인데 오랜세월의 경과로 글자의 마모가 심한 상태지요. 그래서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많은데요. 그중 쟁점은 일부내용의 ‘왜(倭,일본)’와 ‘고구려’의 주어를 둘러싼 논란입니다. 일본군부는 비밀리에 해독을 진행한후 “백제와 신라는 옛부터 ‘왜의 속민’으로서 조공을 바쳐 왔는데, 왜는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 백제와 신라를 격파하고, 신민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으로 발표를 하지요. 이에 대하여 우리학자들은, “백제와 신라는 옛부터 ‘고구려의 속민’으로서 조공을 바쳐 왔는데, 신묘년에 왜가 왔으므로, 고구려가 바다를 건너 백제를 격파하고,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로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이구요. 일본군부가 저들 유리하게 몇 자구를 조작해서 역사를 왜곡 했다는게 우리의 주장 인데요. 물론 이문제는 전문역사학자들의 소관이긴 하지만, 상식적으로 납득 않가는게 많습니다. 아니! 비문의 주인공이 누군데, ‘왜’가 뚱딴지 같이 끼어들어 주인공으로 둔갑하느냐 이겁니다. 이게 일제의 간악한 농간질 아니겠어요. 과거 일제는 한결같이 ‘고대에 일본이 한반도의 남쪽일부를 지배했었다.’는 주장을 펼쳐 왔지요. 이른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인데요. 임나는 옛 가야지방으로 지금의 김해지역인데, 가야는 철기생산으로 번성했던 고대의 부족국가 였지요. 일본은 가야의 월등한 철기문화를 전수받고, 특히 백제와는 한 집안처럼 활발한 교류를 통하여 선진문물을 받아 들일 만큼, 고대 일본의 한반도 의존율은 절대적 이었지요. 우리를 배우러 왕래 한 것을 가증스럽게 지배했다고 조작하는거 아니겠어요. 그러나 우리가 문약에 빠져 나라를 잃고 제것을 지키지 못한 결과, 침략자들에 의한 우리역사의 파괴와 날조왜곡, 폄하조롱을 받았던 것이니 한심 한거지요. 일제의 비문조작이 100여년전 과거라면, 현재 우리 눈앞에서 진행중인 중국정부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은, 고구려를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으로 단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역사침탈이자 왜곡이 아닐수 없는데요. 중국은 ‘통일적 다민족 국가’의 입장에서, 현재 거느린 55개 소수민족의 과거역사 모두를, 자기네 역사로 간주하는 거지요. ‘현재의 중국영토안에 있었던 과거 모든 민족의 역사는 곧 중국역사’라는 겁니다. 이 논리대로 한다면, 고조선은 물론 고구려와 발해까지도 중국사가 되는 거고, 더 넓게는 문화적예속을 받았던 백제와 신라도 그 범주에 든다는 가정이 제기될 수도 있는데요. 비문조작보다 더 섬뜩합니다. 어쩌다 이리 되었는지. 않타깝기만 하네요. (김 영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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