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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6.25전쟁 70주년 철원 학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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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6.25전쟁 70주년 철원 학술대회

6.25는 그날 새벽에 시작 된 게 아니다

김용빈.jpg
철원군농민회 회장 김용빈

 

6.25 70주년을 맞아 분단의 땅이자 민족 통일의 중심지 철원에서 한국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 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찾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있었다.

 

지난 7월 14일 철원 한탄리버호텔 대연회장에서 태봉학회. 한국군사사학회. 철원역사문화연구소 공동으로 학술대회를 열고 각계의 전문가를 초청하여 폭넓고 다양한 내용으로 6.25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았다.

 

개회사에 이어 1.2.3부로 나뉘어 진행된 학술대회는 무려 18명의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다양한 주제를 심도 있게 발표 하였다. 토론의 내용이 방대하여 중요 내용과 그에 따른 필자의 의견을 함께 정리함을 이해를 바라는 바이다.

 

현장의 이야기

 

토론회에 참석하여 한국전쟁의 아픈 이면의 내용을 많이 듣게 되었는데 한국전쟁은 1950년 6.25일 새벽에 느닷없이 발발한 전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전쟁은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주변 각국의 이해득실에 따라 발생한 세계적 사건으로 소개 되었다.

 

1860년대 러시아는 아시아의 동쪽 끝 블라디보스톡을 차지하고 지속적인 남진정책의 욕구를 가지고 있었고, 영국의 거문도 점령 사건은 남진 하려는 러시아와 이를 저지 하려는 영국의 알력 싸움의 한 단면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동유럽에 사회주의 국가를 확장을 시도하던 시기에 미국의 유럽 부흥정책인 마셜플렌으로 유럽에서 정세가 불리해지자 동북아의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켜 미국을 전쟁의 수렁에 빠트려 발목을 잡아두고 그 동안 소련은 동구 유럽에서 자기 세력을 확고히 하고자하는 속셈이 있었다.

 

그리고 국민당군 장개석과의 지난한 국내 전쟁에서 승리한 모택동의 중국은 소련과의 새로운 국가 관계를 요구 했는데 중국과의 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소련은 양국간의 완만한 관계를 위해 한국 전쟁에 동의의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 또한 유엔군이라는 이름으로 16개국이 참여하여 한국전쟁은 남.북의 동란을 넘어 세계전이 되었고 동서 냉전구도의 자본주의 – 사회주의 싸움의 각축장이 되었다. 이는 휴전협정 후 지금까지 한반도에 전쟁의 열기가 지금까지 진행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이상철 전쟁기념관장은 문정부 초기 발 빠르게 진전됐던 남북의 화해 분위기에서 북미관계를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며 한반도 운전자로써 큰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를 하였다. 그러나 2019년 초 북미의 하노이 회담 결렬로 금이 가기 시작한 화해의 분위기는 올해 들어 다시 악화된 남북관계를 안타까워하며 이제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다시 풀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불러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을 하였다.

 

이 과정에는 비핵화문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 북미관계해결 등의 문제를 떼어 볼 것이 아니고 장기적 안목으로 복합적이고 단체적으로 풀어가야 하며 주변국들을 설득해 가야하는 우리의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를 하였다.

 

김영규 철원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의 철원 어르신들에 구술증언을 소개하는 시간에는 철원 주민들은 전쟁시에 전쟁터에 군인과 노무대로 동원되어 전쟁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었으며 고향을 떠나 70%는 북으로 올라가거나 20% 남으로 내려가 예전부터 살던 주민은 매우 적다고 한다. 그리고 잊지 못할 내용은 북의 함흥에서 살다 탈북해서 온 토론자는 흥남이 장진호 전투시 시가지가 파괴되고 초토화되어 그 후 주민들의 복구와 피폐한 삶을 소개하여 전쟁으로 인한 고통은 남과 북 모두에게 큰 상처를 주었음을 일깨워 주었다.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분단 75년의 철원에서 장시간에 걸쳐 한국전쟁사의 배경, 과정, 고통을 여러 발제자를 통해 다각적으로 펼쳐본 토론의 장이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살고 싶은 독자분들은 토론회 자료집「 6.25전쟁 70주년의 역사적의 의미와 철원」 찾아 일독 할 것을 권한다.

 

이제는 우리가 종전–평화 협상의 당사자로 나서자

 

우리는 2차 대전이 끝나고 불완전한 독립국이 되어 승전국들의 자기 밥그릇 싸움으로 분단의 비운을 맞았다. 그 후 20개국이 맞붙은 전쟁터로 전국토를 폐허로 만들고 수백만의 전쟁 희생자를 낸 실질적인 세계대전인 한국전쟁의 휴전 후 70여년이 흐르는 동안 동서 냉전의 정점이 되어 체제 경쟁 속에서 신음하며 살아 왔다.

 

그 세월 속에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둘러싼 주변국들의 여러 논의와 만남이 있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들은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을 바라지 않거나 우리처럼 절박하지 않다는 반증으로 보인다. 오히려 국가별로 제 나라의 득실을 먼저 계산하고 남북의 분단 상황을 이용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에게는 전쟁의 위협을 내려놓고 전쟁이 없는 평화는 너무도 절실한 민족의 바램이다.

 

2000년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위원장의 첫 남북정상이 만난 615공동선언을 발표하고 노무현대통령과 김정일위원장의 만남, 문재인대통령과 김정은위원장과의 만남은 남북 모두에게 감동으로 남았고 남북이 실질적인 화해와 협력을 위해 만나고 실천했음을 눈으로 생생히 보았다.

 

이제는 휴전협상의 당사자가 종전협상장에 나가야 한다는 오래된 족쇄를 스스로 풀어 버려야 한다. 즉 1953년 휴전 당시 협상을 맡았던 미국이 빠지고 한국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이제부터 종전 –평화협상에는 전쟁의 당사자이고 분단의 땅에서 70년을 살고 있는 이 땅의 주체인 남과 북이 나서서 종전 선언을 하고 남과 북이 민족의 앞날을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고 남북 한민족이 공동 번영의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즉 남의 나라가 우리의 평화를 위해서 팔 걷고 나서주지 않는다는 경험을 우리는 너무 오랜 세월을 하였다. 우리 민족의 문제를 외세에 의존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 해결 하고자하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6.25때 내어주고 70년이나 남의 나라인 미국에 내준 군사작전지휘권 회수에 나서야 한다. 세계 어느 나라가 자기 나라의 국방의 핵심인 군사작전지휘권을 남의 나라에 70년이나 내준 나라는 없다. 일본놈들이 우리나라를 강점할 때 외교. 군사 분야부터 빼앗아 가던 기억을 잊으면 안 된다. 국군의 60만 대군을 스스로 지휘할 당연한 권리를 이제는 찾아와야 한다. 그것이 종속을 벗어난 대등한 한미동맹의 위상이라고 본다. 코로나 대처 능역으로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졌다. 이제는 우리도 눈을 멀리 보고 세계의 흐름 속에서 우리의 갈 길을 냉철히 생각해 볼 때이다. 그래서 10년 뒤에도 분단 속에서 헤메이지 않도록 준비해 보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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