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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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철원이 낳은 항일 독립 운동의 거목10월 17일은 항일독립운동의 거목 박용만 선생의 서세 92주년으로 철원독립운동기년사업회와 박용만선생철원기념사업회에서는 지난 17일 철원초등학교 교정의 추모비를 찾아 추모식을, 18일 일요일에는 철원소망교회에서 추모예배로 추모의 시간을 진행하며 선생의 뜻을 기리며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코로나 19로 아쉽게도 적은 인원만이 참여하였으나 다음에는 선생의 위업을 더욱 되새기는 시간을 준비하는 마음이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다. 나라를 빼앗겼던 일제 36년 그리고 국운이 기울던 시절 의병들의 항쟁으로 반세기는 일본의 침략과 노략질에 항거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초들의 힘으로 이 땅의 자주 독립을 이루기 위한 고난의 역사가 있었다. 그 중에 발자취가 잘 남아서 조명을 받는 이가 있는가 하면 역사의 뒤안길에 가려 잘 보이지 않거나 심지어 잃어버린 이도 있을 것이다. 철원의 우성 박용만은 1881년 여름 철원군 철원면 중리 109번지에서 태어나 청년 시절부터 사회에 관심을 갖고 활빈당 활동, 황무지개척권반대투쟁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루기도 한다. 일본으로 유학을 하여 국제적 견문을 넓히고 이후 1905년 미국으로 건너가 네브라스카 주립대학에서 정치학과 군사학을 전공하며 ROTC로 임관하여 우리나라의 현대군인의 시원이 되고 학사장교의 시작점이 되었다. 그는 단순히 학업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방책을 세우고 실천해내는 괴력의 투혼을 발휘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는 남의 힘이 아닌 우리의 힘이 필요하다는 신념으로 무장투쟁을 강조했고 실제로 군사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였다. 학업을 하는 한편 학교 당국의 승인을 받아 한인소년병학교를 세워 일하며 군사 훈련을 받는 군사 학교를 직접 운영 하였다. 또한 독립운동을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미주 한인 동포 사회에 항일독립 정신을 고취 시키고 독립자금 모금에 적극 나서도록 동포들을 조직화 하였다. 1914년 하와이에서는 대조선군민군단이라는 군사전문학교를 창단하여 장교를 양성하고 매년 호룰루루 시가지에서 군사 행진을 펼치는 당시로는 어마 어마한 일들을 실행해 내었다. 그러나 이 시기 이승만의 정치적 야욕으로 학교가 중단 되었는데 항일무장투쟁 준비를 훼방한 행위는 분명히 역사적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는 하와이에서 중국으로 터전을 옮긴 후에도 독립을 향한 열정은 멈출 줄을 몰랐다. 북경에 흥화실업은행을 세우고 농장을 세우며 자금을 독립 자금을 조달할 준비를 하였다. 그는 언론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1911년 미국에서 하와이에서도 신문사를 운영하고 주필로써 당시 독립운동의 정신을 강화 하였다. 한글 교과서를 집필하고 소년병학교의 교재를 직접 만들고 국민 개별설등 수많은 책을 집필하여 독립운동가 중에는 제일 많은 도서를 남겼다고 한다. 그는 군인으로 사상가로 언론인으로 두루 활동을 하였고 그 무대가 태평양을 넘나들며 국제적 감각으로 움직였으며 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투지를 보여 주었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일제가 강제 합병을 한 후 바로 무형국가론(임시정부)론을 주창하여 독립운동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으며 임시정부 초기 잠시나마 외부총장의 역할을 맡기도 했었다. 그러나 제한적인 임시정부의 역할을 넘어 더 크게 활동을 하고자 외부총장 자리를 내놓고 함께하는 동지들을 더 크게 조직하는 활동을 펼쳤다. 그의 항일독립운동의 영역과 크기는 그 어디에도 견주기도 어려우나 아직도 국가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고향인 철원에서까지도 아직까지 희미하게만 보이고 있어 안타까움이 산 같이 크다. 그가 걸었던 길의 기록은 몇 안 되는 서책이 있을 뿐 학계의 연구도 빈약하다. 이는 친일파를 계승하고 독재자인 이승만과 자주독립의 기치를 내 걸었던 박용만은 정치적 숙적 관계로 그 동안 학계에서 조차 박용만선생을 외면해 온 결과이다. 그의 마지막은 북경역 앞의 자택에서 비운의 총탄으로 운명을 하였다. 당시 일제는 선생을 불령선인의 령수로 지목하고 늘 주시하며 감시를 하고 있었기에 역사 속 검은 그림자를 밝혀내는 것은 아직도 과제로 남아 있다. 자세한 내용은 지역 신문의 지면에 매주 우성 박용만의 실화소설 [칼의 길]이 연재되고 있으니 독자들의 관심을 바란다. 멀리 그가 활동했던 미국과 카나다의 뜻있는 교포들은 선생의 위업이 이제는 역사의 전면에 들어나기를 고대하고 있으며 그 일이 국내에서 먼저 시작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제는 고향인 철원에서 선생의 거대한 발자취를 온전히 역사의 반열에 올려놓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생가터를 복원하고 기념관을 세우고 건국훈장 대통령장인 훈장의 품격도 그의 업적에 어울리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으로 승격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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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추석, “주택용소방시설”로 미안함과 걱정은 덜고, 안심을 선물해 보자철원소방서에는 고향을 떠나와 타향살이를 하는 직원이 많다. 지난 달, 우리 센터의 한 직원이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 댁에 노후 된 소화기와 주택화재경보기를 교체하고 추가로 설치해 드리고 왔다고 전했다. 부모님은 “이럴 때는 네가 소방관인 덕을 본다.”며“불이 안 나면 좋겠지만 만약 난다면 꼭 사용하겠다.”며 기특해 하셨다고 한다. 직원은 매번 찾아뵙지 못해서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늘 가시처럼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주택용소방시설을 설치해드리니 안심된다고 말하는 직원의 얼굴은 밝았다. 올 상반기, 철원에서는 주택용소방시설을 사용해 실제 초기화재를 진압해 더 큰 피해를 막은 사례만 3건이며 강원도 전체에서는 주택용소방시설로 인한 주택화재 피해저감 실례가 30여건에 달한다. 모두 올해 일어난 사건들이자, 주택용소방시설의 작동 및 사용으로 인명과 재산피해를 크게 저감한 사례다. 이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한다. “주택용소방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천만다행이다.”라고. 유비무환이라 했다. 철저한 준비가 되어있으면 근심이 없는 법이다. 평소 자주 왕래하지 못하여 항상 미안함과 그리움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또한 고향집에 대한 걱정도 목 안의 가시처럼 있었을 것이다. 이제 미안함은 덜고 걱정은 안심으로 바뀔 수 있도록 이번 추석, 고향집에 주택용소방시설을 선물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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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가을철, 부주의에 의한 화재를 예방하자최근 10년간 부주의로 인해서 발생한 화재만 19만 여건에 이른다. 그 중에서도 담배꽁초로 인한 화재는 전체의 31%(63,926건)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고, 음식물 조리 중 발생한 화재가 16%(27,832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이외에도 화원방치 및 논, 밭 소각 등이 있으나, 가장 많은 화재발생 원인은 일상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부주의에 의한 것이다. 장소별 화재발생을 살펴보면 전체 화재 426,521건 중 주거, 산업시설, 임야 등 화재발생 장소는 다양하지만 주거시설에서만 111,254건이 발생하여 주택화재가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를 보였다. 위의 통계들을 살펴보면 우리 일상생활 속 주거시설에서 부주의에 의한 화재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계절적으로 가을은 추석명절을 끼고 있어 음식물 조리 등 화기 취급이 늘어나며, 등산객 증가로 담배꽁초 등에 의한 입산자 실화 발생이 증가하는 시기이다. 즉, 상기 통계에서 기술한 위험요인이 모두 존재하는 계절이 가을이다. 그럼 가을철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선 무엇이 중요할까? 주거시설에서는 소화기와 주택화재경보기를 갖추는 것이다. 주택에서 초기 화재 시 신속하게 불씨를 진압할 수 있으며 만약 화세가 거세다면 주택화재경보기의 작동음으로 빠른 대피가 가능하다. 잠들어 있는 새벽에도 화재가 발생하면 울리는 경보기로 인해 언제든 대피가 가능할 것이다. 등산객은 입산 시 절대 담배를 태우지 말아야 하며, 평소 휴대용 재떨이를 지니고 다니며 꽁초를 무단투기 하지 않아야 한다. 주택용소방시설 설치로 귀중한 인명·재산피해를 막고, 담배꽁초를 무단투기하지 않음으로써 소중한 자연을 보호하여 최소 노력으로 최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소방서에서는 추석연휴 화재 및 가을철 산악사고를 대비하여 여러가지 예방대책들을 추진하지만 이러한 대책들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국민들의 적극적인 공감과 참여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다함께 조금만 노력하여 안전한 가을을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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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추석, “주택용소방시설”로 미안함과 걱정은 덜고, 안심을 선물해 보자철원소방서에는 고향을 떠나와 타향살이를 하는 직원이 많다. 지난 달, 우리 서의 한 직원이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 댁에 노후 된 소화기와 주택화재경보기를 교체하고 추가로 설치해 드리고 왔다고 전했다. 부모님은 “이럴 때는 네가 소방관인 덕을 본다.”며“불이 안 나면 좋겠지만 만약 난다면 꼭 사용하겠다.”며 기특해 하셨다고 한다. 직원은 매번 찾아뵙지 못해서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늘 가시처럼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주택용소방시설을 설치해드리니 안심된다고 말하는 직원의 얼굴은 밝았다. 올 상반기, 철원에서는 주택용소방시설을 사용해 실제 초기화재를 진압해 더 큰 피해를 막은 사례만 3건이며 강원도 전체에서는 주택용소방시설로 인한 주택화재 피해저감 실례가 30여건에 달한다. 모두 올해 일어난 사건들이자, 주택용소방시설의 작동 및 사용으로 인명과 재산피해를 크게 저감한 사례다. 이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한다. “주택용소방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천만다행이다.”라고. 유비무환이라 했다. 철저한 준비가 되어있으면 근심이 없는 법이다. 평소 자주 왕래하지 못하여 항상 미안함과 그리움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또한 고향집에 대한 걱정도 목 안의 가시처럼 있었을 것이다. 이제 미안함은 덜고 걱정은 안심으로 바뀔 수 있도록 이번 추석, 고향집에 주택용소방시설을 선물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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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6.25전쟁 70주년 철원 학술대회6.25 70주년을 맞아 분단의 땅이자 민족 통일의 중심지 철원에서 한국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 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찾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있었다. 지난 7월 14일 철원 한탄리버호텔 대연회장에서 태봉학회. 한국군사사학회. 철원역사문화연구소 공동으로 학술대회를 열고 각계의 전문가를 초청하여 폭넓고 다양한 내용으로 6.25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았다. 개회사에 이어 1.2.3부로 나뉘어 진행된 학술대회는 무려 18명의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다양한 주제를 심도 있게 발표 하였다. 토론의 내용이 방대하여 중요 내용과 그에 따른 필자의 의견을 함께 정리함을 이해를 바라는 바이다. 현장의 이야기 토론회에 참석하여 한국전쟁의 아픈 이면의 내용을 많이 듣게 되었는데 한국전쟁은 1950년 6.25일 새벽에 느닷없이 발발한 전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전쟁은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주변 각국의 이해득실에 따라 발생한 세계적 사건으로 소개 되었다. 1860년대 러시아는 아시아의 동쪽 끝 블라디보스톡을 차지하고 지속적인 남진정책의 욕구를 가지고 있었고, 영국의 거문도 점령 사건은 남진 하려는 러시아와 이를 저지 하려는 영국의 알력 싸움의 한 단면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동유럽에 사회주의 국가를 확장을 시도하던 시기에 미국의 유럽 부흥정책인 마셜플렌으로 유럽에서 정세가 불리해지자 동북아의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켜 미국을 전쟁의 수렁에 빠트려 발목을 잡아두고 그 동안 소련은 동구 유럽에서 자기 세력을 확고히 하고자하는 속셈이 있었다. 그리고 국민당군 장개석과의 지난한 국내 전쟁에서 승리한 모택동의 중국은 소련과의 새로운 국가 관계를 요구 했는데 중국과의 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소련은 양국간의 완만한 관계를 위해 한국 전쟁에 동의의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 또한 유엔군이라는 이름으로 16개국이 참여하여 한국전쟁은 남.북의 동란을 넘어 세계전이 되었고 동서 냉전구도의 자본주의 – 사회주의 싸움의 각축장이 되었다. 이는 휴전협정 후 지금까지 한반도에 전쟁의 열기가 지금까지 진행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이상철 전쟁기념관장은 문정부 초기 발 빠르게 진전됐던 남북의 화해 분위기에서 북미관계를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며 한반도 운전자로써 큰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를 하였다. 그러나 2019년 초 북미의 하노이 회담 결렬로 금이 가기 시작한 화해의 분위기는 올해 들어 다시 악화된 남북관계를 안타까워하며 이제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다시 풀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불러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을 하였다. 이 과정에는 비핵화문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 북미관계해결 등의 문제를 떼어 볼 것이 아니고 장기적 안목으로 복합적이고 단체적으로 풀어가야 하며 주변국들을 설득해 가야하는 우리의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를 하였다. 김영규 철원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의 철원 어르신들에 구술증언을 소개하는 시간에는 철원 주민들은 전쟁시에 전쟁터에 군인과 노무대로 동원되어 전쟁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었으며 고향을 떠나 70%는 북으로 올라가거나 20% 남으로 내려가 예전부터 살던 주민은 매우 적다고 한다. 그리고 잊지 못할 내용은 북의 함흥에서 살다 탈북해서 온 토론자는 흥남이 장진호 전투시 시가지가 파괴되고 초토화되어 그 후 주민들의 복구와 피폐한 삶을 소개하여 전쟁으로 인한 고통은 남과 북 모두에게 큰 상처를 주었음을 일깨워 주었다.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분단 75년의 철원에서 장시간에 걸쳐 한국전쟁사의 배경, 과정, 고통을 여러 발제자를 통해 다각적으로 펼쳐본 토론의 장이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살고 싶은 독자분들은 토론회 자료집「 6.25전쟁 70주년의 역사적의 의미와 철원」 찾아 일독 할 것을 권한다. 이제는 우리가 종전–평화 협상의 당사자로 나서자 우리는 2차 대전이 끝나고 불완전한 독립국이 되어 승전국들의 자기 밥그릇 싸움으로 분단의 비운을 맞았다. 그 후 20개국이 맞붙은 전쟁터로 전국토를 폐허로 만들고 수백만의 전쟁 희생자를 낸 실질적인 세계대전인 한국전쟁의 휴전 후 70여년이 흐르는 동안 동서 냉전의 정점이 되어 체제 경쟁 속에서 신음하며 살아 왔다. 그 세월 속에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둘러싼 주변국들의 여러 논의와 만남이 있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들은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을 바라지 않거나 우리처럼 절박하지 않다는 반증으로 보인다. 오히려 국가별로 제 나라의 득실을 먼저 계산하고 남북의 분단 상황을 이용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에게는 전쟁의 위협을 내려놓고 전쟁이 없는 평화는 너무도 절실한 민족의 바램이다. 2000년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위원장의 첫 남북정상이 만난 615공동선언을 발표하고 노무현대통령과 김정일위원장의 만남, 문재인대통령과 김정은위원장과의 만남은 남북 모두에게 감동으로 남았고 남북이 실질적인 화해와 협력을 위해 만나고 실천했음을 눈으로 생생히 보았다. 이제는 휴전협상의 당사자가 종전협상장에 나가야 한다는 오래된 족쇄를 스스로 풀어 버려야 한다. 즉 1953년 휴전 당시 협상을 맡았던 미국이 빠지고 한국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이제부터 종전 –평화협상에는 전쟁의 당사자이고 분단의 땅에서 70년을 살고 있는 이 땅의 주체인 남과 북이 나서서 종전 선언을 하고 남과 북이 민족의 앞날을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고 남북 한민족이 공동 번영의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즉 남의 나라가 우리의 평화를 위해서 팔 걷고 나서주지 않는다는 경험을 우리는 너무 오랜 세월을 하였다. 우리 민족의 문제를 외세에 의존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 해결 하고자하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6.25때 내어주고 70년이나 남의 나라인 미국에 내준 군사작전지휘권 회수에 나서야 한다. 세계 어느 나라가 자기 나라의 국방의 핵심인 군사작전지휘권을 남의 나라에 70년이나 내준 나라는 없다. 일본놈들이 우리나라를 강점할 때 외교. 군사 분야부터 빼앗아 가던 기억을 잊으면 안 된다. 국군의 60만 대군을 스스로 지휘할 당연한 권리를 이제는 찾아와야 한다. 그것이 종속을 벗어난 대등한 한미동맹의 위상이라고 본다. 코로나 대처 능역으로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졌다. 이제는 우리도 눈을 멀리 보고 세계의 흐름 속에서 우리의 갈 길을 냉철히 생각해 볼 때이다. 그래서 10년 뒤에도 분단 속에서 헤메이지 않도록 준비해 보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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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봉명학교에서 만난 여인들철원독립운동기념사업회 사무국장 김용빈 2.27일 저녁 철원중고 동문회관에서는 2020봉명학교 아카데미 2번째 강의가 열렸다. 봉명학교에서는 매년 독립운동사를 철원을 중심으로 공부하고 있다. 이번에는 강원여성독립운동가와 철원이라는 주제로 박미현(강원도민일보 이사. 문학박사)강사를 초청하여 어려운 시기 특히 사회적 제약이 많았던 여성들의 독립운동사를 살펴봤다. 박미현 강사는 지난해 3.1절 100주년을 맞아 도내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모아 시·군 순회 전시를 펼치는 등 강원도 여성독립운동사에 깊은 관심을 가진 전문가로 꾸준히 연구 해오고 있다. 강사는 먼저 철원여성독립유공자의 현황을 소개 하였다. 독립유공자는 전국적으로 15,825명이고 그중 여성은 2,98%인 472명이며 강원도에서 출생 했거나 활동한 여성은 17명이고 그중에 철원(옛 철원군,김화군)은 3.1만세운동에 곽진근여사, 김경순, 이소희, 학생운동에 왕종순, 이계원, 해외운동에 김도연등 6인으로 강원도에서 가장 많다. 특히 여성은 왕종순, 이소희는 2019년에야 대통령 표창이 수여되었고 다른 이들도 최근에야 공훈이 인정 되었다. 이는 독립유공자의 기준을 형무소 수형 기간이 3개월 이상이어야 공훈 대상인데 당시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어려운 시대를 반영하여 최근에 들어서는 여성들은 3개월 미만이라도 심사 대상으로 포함하여 힘들었던 여성들의 항일독립운동이 조명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여성들의 독립운동 발자취는 서대문경찰서에 검거되거나 서대문형무소등에 투옥된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에서도 찾을 수 있다. 보존된 감시대상인물카드(총 약 6만여명 예상) 내용을 보면 4,858중 여성은 179명으로 강원지역 여성은 22명인데 보안법, 치안유지법등 독립운동과 직접 관련있는 여성은 18명이고 철원지역이 계화성, 박경자, 왕종순, 전선녀, 허균 5명으로 가장 많다. 그 중 허균은 허마리아, 허정균등의 다른 이름을 쓰며 본적은 철원에 두고 충남 당진 출생으로 잠업에 인연을 맺고 잠업교사와 양잠지도원으로 당진, 춘천, 연천, 철원의 묘장면, 동송면 잠업소에 근무를 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그는 33년 서울 신설리의 제사·고무공장의 노동운동과 파업지도로 검거, 서대문 형무소에서 2년의 옥고를 치르고 광복 직후에는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집행위원 및 부인부 책임자로 활동하는 등 여성노동자 인권 향상을 위해 기여하였다. 그의 자료는 검거 당시 조사자료, 신문, 잡지등 풍부한 자료가 있다고 한다. 신문기사에서 찾아보는 항일운동 관련 철원여성들도 많다. 신문은 신문사의 입장, 기자들의 태도와 관점에 따라 내용이 반영되고 일제 강점기의 자유롭지 못한 시대 상황을 감안하여 내용을 참고 하여야 한다고 한다. 신문 기사 중 1907년에 시작한 국채보상운동에 여성도 평등한 구성원으로 참여하는데 강원도에서는 60여명의 선각 여성이 동참했다. 대한매일신보 1907년 4월 25일 1면에 ‘부인출연’이라는 제목으로 철원군 여성의 국채보상운동이 기사가 실렸다. 이 여성들은 봉명학교를 세운 이범하 선생의 어머니 김소사와 부인엄씨, 소몽 이봉하 선생의 어머니 윤소사와 심씨가 의연금과 은가락지를 국채보상기성회로 보냈다는 기사다. 3.1만세항쟁 후인 1920년대 초반 일제의 식민지배 방식을 형식적으로는 문화통치로 전환되고, 일제 식민 자본주의에 대응하여 사회주의 사상이 유입 되면서 독립운동은 사회운동, 학생운동, 청년운동, 여성운동, 농민운동, 노동운동, 반제국운동등 다양한 항일독립운동 형태로 전개 되었다. 철원은 서울과 가깝고 철도등 교통이 발달하여 왕래가 활발하고 서울로 유학도 많이 보내 일찍이 시대 흐름에 앞서 갔다. 한편 일제 자본가들은 대규모 인력을 저임금으로 수탈하여 큰돈을 벌 수 있는 제사공장, 고무공장, 정어리고장들을 세웠다. 1920년대 중반부터 강릉, 춘천, 철원, 원주, 평창 등지에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는 제사공장을 지었다. 철원에는 1933년 종연방직에서 제사공장을 신축했는데 나이어린 여성 노동자를 일선 행정의 지원을 받아 철원에서 고성지역까지 모집해 왔다. [조선중앙일보. 1934.7.11. 4면]에 보면 저임금과 열악한 근무 여건에서 300, 400여명이 고생하며 일하고 있었는데 담장을 뜯고 도망을 가기도 하고, 시내에서 살려 달라고 아우성 치고, 감독자에게 잡혀 못 간다고 발악하며 끌려가고, [동아일보 1935.2.12.] 심지어 얼마 되지 않는 상여금을 설 이후에는 고향에서 다시 안 올까봐 뒤로 미루며 상여금을 주지 않았다는 기사 내용이 있다. 그후 [1935. 7. 11 2면] 300명의 직공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분개하여 동맹파업을 벌여 주도한 노동자 20여명이 끌려간 사건으로 제사공장의 불리한 노동조건에 대해 노동자들이 공장주에게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쟁의를 일으켜 일제에 저항함으로써 지역사회에 영향을 주었다는 기사도 있다. [시대일보 1925.8.8.] 철원무산청년회 주최로 수해동포돕기 동서음악대회에 영춘관 기생 일동이 10원을 의연 하였다 [중외일보 1927. 8. 4] 8세 여아 오순덕이 철원중리의 일본인 등택차랑 소유의 과수원에서 오디를 따먹다가 붙들려 넓적다리살이 도려져 피투성가 되는 사건이 발생 하였다. 이에 철원청년회, 철원형평지사, 철원삼업조합 3개 단체가 긴급 대책회의를 하다가 한밤중에 경찰에 해산 당했다. 신간회도 본부 차원에서 대응하는 등 오순덕 사건이 전국에서 관심을 갖고 지지하였는데, 이렇게 이슈화 되었던 것은 당시 철원의 청년등 단체의 활동이 왕성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강사의 설명이다. 강사는 철원의 독립운동가들이 잘 조명되지 않고 한명 한명의 자세한 활동 내용부족하다는 질문에, 아직도 많은 자료가 번역되지 않았고, 우선 해방 전 일제강점기까지의 역사 정리가 필요하며, 그 후에 철원독립운동이 사회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고 해방 이후 활동과 영향이 연구 되어야한다고 답을 하였다. 끝으로 더 많은 독립운동가분들이 밝혀지지 않았거나 아직도 서훈이 안 분들이 있는데 왜 그런가라는 질문에는 유공자 서훈은 국가연구원, 시민연구원 그리고 지역 사회와 지자체에서 관심을 같고 꾸준히 추진하여 연구 발표하여 한다는 과제를 주며 지역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깊어가는 밤 시간을 마무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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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올해는 농민수당 도입!올해는 농민수당 도입 ! 지속 가능한 농촌- 철원을 위하여 철원농부 김용빈 경자년을 맞이하며 협동이 잘되고 부지런한 쥐처럼 모두가 잘사는 한해가 되기를 바람니다. 지난해에 이루지 못한 것 중 하나가 농업·농촌·농업을 살리고져 논의했던 농민수당의 결실이 없는 것이다. 전국의 도별로 적극 추진되고 있으며 이미 시행에 들어간 군단위 지자체도 있으며 실질적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곳들도 있다. 강원-철원도 올해는 시행이 되어야 한다. 국민의 먹거리를 생산하며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농촌의 자연환경과 생태를 유지, 보호하고 지하수를 확보하는 등 공익을 위하여 수고하는 농민들에게 기초 생활에 필요한 실질적 지원으로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중요하게 논의되어 왔다. 지난해 정부는 협상에서 농업분야 WTO개도국 지위를 포기해 버렸다. 현재 가뜩이나 수입농산물이 넘쳐나서 우리네의 밥상을 점령하고 농민들은 심어볼 것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는 농촌과, 농업 상황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식량 자급율는 20%로 OECD국가 중 꼴찌이고 사료 원료곡을 포함하면 5%도 안되는 나라이며 주곡인 쌀도 수입하는 처지에 있다. 세계적으로 식량도 무기가 되는 시대 상황에 우리나라는 식량안보도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유럽강국도 심지어 미국의 농업도 정부의 지원 정책에 의지하여 수출농업을 하고 있는 현실이다. 농촌과 도시의 차별을 줄여서 국가의 균형 발전을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이에 열악한 한국의 농업 여건 속에서 도시와 농촌의 불균형을 극복하고 더 나아가 존재 기로에 처한 농촌의 버팀목이 되어줄 농민수당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중요시 할 때이다. 또한 농촌으로 귀농하고자하는 귀농인, 청년 농업지망자등에게 농촌을 선택을 선택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 줄 것이다. 그 동안 역대 정부는 수출산업을 위해서 농산물을 수입해야 한다는 이유로 과도한 농산물을 수입하게 되었고 지어먹을 농사가 없는 농촌을 존망의 위기까지 몰고 왔다. 이제는 다른 선진국처럼 수입으로 생긴 국가의 여유를 농촌에 재투자해야 한다. 이제는 가격이 보장되지 못하는 시장 상황에서 규모화, 시설투자 집중농업, 무한경쟁농사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농촌에서 삶이 가능한 체계를 세워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국민들이 신토불이 우리의 농산물을 먹기 위해서는 농촌이 살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농민이 살아야 가능하다. 농촌이 뿌리이고 도시는 꽃이라고 한다. 나라가 건강하고 튼튼한 균형 발전을 이루려면 뿌리인 농촌이 말라죽고 있는 현실에서 농촌의 활로를 위해 적극 나서야하고 우선은 주민과 가까이 있는 지자체가 먼저 시작해야 한다. 농민수당의 필요성과 농촌의 현실을 농협중앙회와 각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국민 홍보 활동을 펼쳐 국민들의 공감대를 형성을 해야 한다. 강원도에서는 다른도 보다도 더 열악한 농사, 농촌 여건으로 제주도를 제외한 인구가 제일 적은 지자체로 농민수당의 필요성이 더욱 절박하다. 강원도에서 처음에 제안됐던 월 10만원을 농민개별로 지급 하도록 시,군과 강원도가 머리를 맞대도 적극 추진을 해야 한다. 또한 농민 수당은 농지면적의 규모에 관계없이 지역화폐로 지급하여 지역의 상경기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강원도에서는 최고의 곡창지대이며 전국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농업군인 철원군이 다른 지자체보다 앞장서서 모범을 보여 강원도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군부대 축소로 어려워진 상경기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고 다른 지역도 동참할 수 있도록 앞장서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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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화재위험 3대 겨울용품 안전사용으로 안전겨울나기겨울철 화재위험 3대 겨울용품이란 전기히터·장판, 화목 보일러, 전기열선을 말합니다. 겨울철에는 계절적으로 화기사용이 증가하는 시기로 화재의 위험요인이 증가합니다. 각 가정에서는 난방 보조기구로 창고에 넣어두었던 전기히터·장판의 사용, 동결방지를 위한 전기열선과 난방비 절감을 위한 화목보일러 사용이 늘어날 시기로 화재발생 위험도 자연 동반 상승하게 됩니다. | 최근 5년간 난방용품 화재발생 현황 | 구분 합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전기장판·히터 1,603 269 316 311 408 299 화목보일러 1,184 276 207 255 250 196 전기열선 1,207 219 237 216 315 220 2014년∼2018년 겨울철 난방용품에서 발생한 화재통계를 살펴보면 전기 장판·전기히터가 1,603건으로 가장 많았고, 전기열선 1,207건, 화목보일러 1,184건의 순이었다. 따라서 3대 겨울용품 사용 시 안전관리 및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화재는 예방이 가장 중요합니다. 전 국민이 화재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겨울용품 안전사용법을 소개합니다. ▼ 전기히터 · 장판 ● 전기장판은 KC마크와 EMF마크가 있는 것으로 구입한다. ● 사용하기 전에 점검한다. ● 사용 전에는 전선의 파열여부를 확인한다. ● 장판이나 콘센트에 낀 먼지를 제거한다. ● 전기장판에 파손되거나 마모된 곳이 있는지 확인한다. ● 온도조절장치가 정상 작동되는지 점검한다. ▼ 전기열선 ● KC인증을 받은 열선 제품을 사용한다. ● 열선에 충격을 주거나 열선을 겹쳐 사용하지 않는다. ● 열선을 옷가지나 스티로폼 등의 보온재로 감지 않는다. ● 열선 주위에 탈수 있는 가연물을 두지 않는다. ● 내용연수가 지난 열선은 정기적으로 교체한다. ● 온도조절기 등에 이상이 생기지 않도록 충격에 주의한다. ● 특정부분이 접히거나 압력이 가해지 않도록 사용한다. ● 제품의 훼손이나 전원 코드의 이상 여부 등을 확인한다. ● 사용하지 않거나 외출 시 반드시 전원을 차단한다. ▼ 화목보일러 ● 가연물과 보일러는 2m 이상 떨어진 장소에 보관한다. ● 보일러실 인근에는 소화기를 비치한다. ● 지정된 연료만 사용한다. ● 투입구 개폐시 화상에 주의한다. ● 연료를 한꺼번에 많이 넣지 않는다. ● 젖은 나무 사용시에는 투입구 안을 3~4일에 1번 정도는 청소를 한다. ● 나무연료 투입 후 투입구를 꼭 닫는다. ● 연통 청소는 3개월에 한번씩 해준다. 이와 같이, 3대 겨울용품 안전사용 및 주택용 소방시설(소화기 및 감지기)을 설치하여 가족과 이웃의 안전과 행복을 이어 나가길 희망 합니다. 2020년 1월 8일 철원소방서장 남흥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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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통일의 준비 – 철원에 토지공개념을통일의 준비 – 철원에 토지공개념을 생태평화통일의 중심지 철원을 위하여 철원농부 김용빈 희망찬 2020 경자년 새해의 밝은 해가 떠올랐습니다. 쥐처럼 협동하여 부지런히 잘사는 한해가 되기를 바람니다. 새해를 맞아 철원이 제일 시급히, 근본적으로 펼칠 일을 제안합니다. 국민들의 경제적 수준이 높아지고 도로가 발전하고 시대가 변하면서 전방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남북 관계가 정상 간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예전에 비하면 냉전의 기온이 사라지고 평화를 위한 대화의 흐름을 만들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철원을 비롯한 전방지역도 민통선이 북상 하면서 더욱 개방되고 있으며 민간인 출입통제 초소의 출입도 많이 완화 되었다. 외지인이 가져간 철원 땅 이에 외지인들의 전방 지역에 높은 관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예전에 비하면 많이 올랐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외지인 소유의 농지, 부동산이 많이 늘었다는 것이다. 중요한 위치의 땅등 70~80%는 외지인 소유로 보고 있으며 이는 철원의 심각한 현실이다. 특히 농민들은 자작지 비율이 낮고 임차농 비율이 높다. 농지의 도지(임차료)도 비싸고 철원의 알짜배기 수익이 외부로 유출되어 철원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통일이 되고 민통선이 해제되면 어떻게 될 것인지, 양지리의 대형축사 단지 난입, 산을 파헤치며 우후죽순처럼 퍼져나가는 태양광 발전 시설물을 통해 적나라하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앞으로는 외지인들에 의한 철원 난개발과 점거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통일 후 외형적으로 발전은 하겠지만 땅을 가진 다수의 외지인에 의해 난개발이 일어날 것이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이며 잘 보존된 유수한 철원의 농업여건과 자연생태계는 난도질당할 것이다. 더욱이 땅을 잃은 철원의 농민들과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갈 곳을 잃어버린 신도시 원주민처럼 교외로 떠밀리거나, 3D 업종에 기웃거리거나, 아예 고향 철원을 떠나는 아픔을 겪게 될 것이다. 옛 말에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는 현상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할 것이며 그 어떤 곳보다도 더욱 난개발이 일어날 우려가 높다. 새로운 구상을 할 때 군정 지표가 [역사와 미래의 고장 통일을 준비하는 철원]인 철원은 자연 생태가 잘 보존되어 지난해 유네스코에 생물보존권 지역으로 등재된 생태와 평화통일을 준비하는 중심지역으로 자리 매김할 수 있게 되었다. 남녁 사람과 북녁 사람의 만나 서로 어울리는 교류의 장이 될 것이며 남과 북의 문화와 제도가 만나고 부딪치며 장, 단점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곳이 남과 북의 문화, 제도, 사람을 서로를 이해하는 공동의 삶의 터가 되기를 바란다. 또한 자연과 생태 그리고 사람과도 어울려 지낼 수 있는 모두가 어우러지는 통일의 목적을 먼저 시행되는 지역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일 중요한 소유의 개념, 그 중 토지의 소유 개념을 넓게 보아야 한다. 시장, 자본, 개인 위주의 남쪽과 공유, 협동농장처럼 집단소유의 북의 제도와 문화가 철원에서 절충되어 서로를 이해해주고 이해받아서 상대를 신뢰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지역이 되어야 한다. [토지 공개념] 국가가 매입하여 공적으로 활용하자. 큰 그림을 그리고 함께 공유하며 같이 사는 공감의 지역으로 만들려면 토지의 공유가 우선 전제 되어야 한다. 기존의 원칙적인 토지공개념에서 개헌안에 좀더 구체적으로 논의되는 토지 공개념을 철원 – 접경 지역에 먼저 시범 실시를 정부에 요구하야 한다. 또한 강원도에서도 평화통일 염두에 두고 강원평화특별자치도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접경지역 – 남북이 갈라진 철원군이 통일 준비와 지역의 생존을 위해 토지 공유제를 먼저 하자고 제안을 해나가야 한다. 토지공개념 우선 지역의 철원의 특징을 보면 첮째 철원의 많은 땅이 외지인 소유로 앞으로 난개발이 예상되고 지역 농민이 농사를 계속짓기 어려워진다. 둘째, 서울등 도시에 비해 땅값이 저렴하여 정부가 유상 매입시 부담이 적다. 셋째, 외지인 소유가 많아 주민들의 거부감이 크지 않을 것이다. 넷째, 건축물이 많지 않고 자연 상태로 남아 있어 보전과 활용을 위한 계획을 세우기가 수월하다. 그리고 세부적으로는 지역민의 소유 토지는 소유, 매매 처분의 선택권을 준다. 앞날의 설계 이 후 철원을 남북이 공존, 공감하며 DMZ 비무장지대를 포함한 자연생태를 보존하며 어울려 지낼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가야한다. 난개발을 막고 자연을 보전과 활용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 현재 수도권은 2,650만이 모여 과밀하게 살고 있으며 과도한 도시화로 주거와 생활환경이 각박해져 가고 있다. 반면 철원은 청정농업, 자연그대로의 생태를 잘 보전하고 현명히 활용하여 여유있는 주거와 휴식 공간, 남북교류의 장, 남북 출입의 거점 시설들을 적절하고 균형있게 배치하여 문화와 삶이 풍요로운 휴식과 생명의 땅으로 만들어 보자. 토지 공개념을 먼저 실시하여 역사의 아픔을 씻어주며 남북을 연결하는 생명수의 한탄강이 흐르고 두루미와 철새가 평화롭게 휴전선을 넘나드는 철원평야에 농업과 자연생태와 평화를 담을 큰 그릇을 준비하자 30년 전에 동.서독을 통일한 독일에서 오는 이들은 접경지역-철원을 보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기네들은 통일 후를 미처 준비하지 못해 분단의 흔적을 해체하고 자연 생태 지역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여 뒤늦게 후회하며 대책을 마련했는데 한반도는 미리 미리 준비하시라고.」 독일이 먼저 통일되어 세계의 이목을 받고 우리의 부러움을 받았다면 우리의 제일 늦은 통일은 서로 화합할 수 있는 멋진 통일을 준비하고 통일 후에도 세계인들이 우리의 평화를 보고 싶어서 구경하러 올 수 있는 곳으로 접경지역 –생태평화철원을 만들 준비를 다 같이 통크게 하기를 새해 아침에 두 손 모아 소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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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음주운전 일탈행위인가, 살인행위인가~@img!!음주운전으로 인한 피해는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 살인행위만큼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최근 언론을 보면 음주운전으로 인하여 타인의 삶까지 완전히 무너뜨리는 안타까운 소식들이 많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더욱더 처벌이 강력해진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개정안 및 도로교통법 개정안 일명 “윤창호 법”이 2018년 12월 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 개정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강원지방경찰청에서 지난달 18일부터 현재까지 음주운전 단속을 실시한바, 정지141건, 취소 187건 등 도합 328건에 이른다. 또한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발생은 45건으로 그중 부상자는 81명에 해당되어 음주운전은 곧 인명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지난 10년간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30%정도 감소하였으며 음주운전 사고 사망자수도 50%넘게 줄었다고 한다. 물론 전체적으로 감소추세에 있지만 음주운전 사고는 아직도 많이 발생하고 있어 의식의 개선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음주운전이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처벌강화만이 답일까? 물론 이러한 처벌강화로 인하여 음주운전의 감소는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실효성 있는 대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음주운전 특성을 파악하여 재범가능성이 높은 음주운전자의 특성상 초범의 처벌강화와 사후 교육시간을 늘리는 등 대책을 좀 더 강화해 나갈 필요성이 있다. 철원경찰서 경무과 경무계 순경 정병배